*배우는 삶/볼거리 맛거리

[스크랩] `사이드웨이` 옆으로 걷기(Sidewalk the SIDEWAYS)

일레인홉의 생각없는 한마디 2007. 10. 2. 11:42

제목이 길어서 제목란에 다 들어가지 않는 군요.

이번 글의 제목은 '사이드웨이' 옆으로 걷기-부제: 와인 카운티로의 나들이

(Sidewalk the SIDEWAYS; Girls' day-out to a wine county)입니다.

제가 와인에 관심을 가진 건 좀 됐지만 굳이 찾아마시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그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하우스 와인 한 잔 하는 정도였는데요,

요즘 와인과 관련된 요소들이 은근 슬쩍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포도 수확의 철이 된 것처럼 제 삶의 타임라인 중에서 와인과 가깝게 접촉할 때가 되었다고 누군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들어간 지 1주일 만에 추석 선물로 와인 오프너 세트와 와인을 받은 거라든가,

이번에 친구와 갑자기 와이너리를 가게된 것 같은 일이 생기는 거죠.

와이너리라고 하면 저기 저기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있는 나파 밸리나 소노마 카운티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와인 카운티가 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2시간 가량 올라가면 나오는 산타바바라 인근의 

산타 이네즈(Santa Ynez)가 바로 이번 Day-out의 목적지입니다.

 

조금 급작스럽게 가다보니 사전 지식 전혀 없이 다녀온 지라 이번 여행지가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에 나온 곳인 줄도

몰랐습니다. 사실 그 영화를 보긴 했는데 전혀 집중하지 않고 봐서 줄거리도 기억 안나고 게다가 배경이 저 위의

나파밸리인 줄 알았던 거죠. 변명변명변명... -_-;;;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사이드웨이' 옆으로 걷기 입니다.

사이드웨이에 나오는 지방으로 갔으면서도 은근슬쩍 사이드웨이에 나오는 요소들을 거의 다 비껴나갔거든요.

어쨌거나 사진과 함께 이 날의 여정을 풀어나가보죠.

 

 

야외 촬영이 아직 많이 서툴러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이 날은 정말 날씨도 좋았고 살짝 계절물이 든 나뭇잎도 반짝반짝하는,

정말 놀러가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나뭇잎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날이었죠.

 

 

가는 길에 작고 예쁜 가게에 들러서 와인이랑 치즈도 구경하고, 점심으로 파스타와 채소 요리, 통닭구이를 샀지요.

가게 안에 물건 진열을 참 예쁘게 해놨더군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습니다.

 

 

 

친구의 기억을 따라 한참 운전하고 갔는데 목적지인 와이너리는 나타나지 않고... 허걱! 어디서 많이 보던 곳이 나왔습니다.

바로 덴마크 사람들의 마을 솔뱅(Solvang)입니다.

아래 지도에선 나와있지 않지만, 저희가 가려던 곳은 산타바바라와 솔뱅 사이에 있는 산타 이네즈 였고요,

가다보니 꺾어야 할 곳에서 반대로 꺾어서 그만 솔뱅까지 가버린 거죠.

지도로 봐선 별로 안 멀어보이죠?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와 약 2~3시간 떨어진 곳입니다.

혼자서라면 절대 안 왔을 거에요. 제가 운전하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이 날 먼 길을 운전해준 친구에게, 와이너리 투어라는 너무도 근사한 생일선물을 해준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너무너무 고마와~ ^^

 

 

솔뱅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미안한 말이지만, 솔뱅엔 정말 볼 게 없습니다.

동네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동네에 아기자기한 덴마크 풍의 건물이 가득한 정도...

와인과 빵/과자로 유명하긴 한데 하루 이상 있으면 질리는 곳이거든요.

이 날은 그 동네에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솔직히 전 왜 솔뱅에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덴마크 전통 마을하고 재즈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한 마디로 이런 느낌인 거죠. 요즘 와인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보니 식당마다 구색맞춰서 와인 몇 병 정도 구비해놓는 것처럼,

요즘 재즈가 인기가 있다보니 너도나도 구색 맞춰서 라이브 재즈 밴드를 모아놓고 페스티벌을 여는 뭐 그런 거...

그래도 재즈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만약 이게 재즈가 아니라 좀 더 최근에 유행하는 살사였다면... 으...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_-;;;;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이 곳이 바로 첫번째로 들른 리도 와이너리(Rideau Winery) 입니다.

15달러인가를 내고 5~6가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이죠. 마음에 들면 사가기도 하고.

이런 와이너리들은 결혼식이나 개인적인 모임용으로 장소 대여를 많이 하는 터라 아주 예쁘게 꾸며놓는 곳이 많습니다.

이 곳도 예외가 아니라 곳곳에 장미도 심어놓고 잔디도 아주 잘 가꿔놨더군요.

바로 아래 사진을 보면 가로등 옆에 연한 색 돌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장식용 돌이 아니라 스피커에요.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시커먼 스피커가 아니라서 전체적인 경관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온 사방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더라고요.

 

 

 

와이너리 자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방문객들이 직접 음식을 가져와서 먹을 수 있도록 자리만 제공합니다.

주말에 느긋하게 피크닉을 즐기기 아주 좋아보이지 않나요.

이 날은 얼마전보다 날씨가 약간 더워져서 정오쯤 되니까 햇볕이 너무 따가와서 피크닉을 즐기기에 완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사막 기후에 익숙한 캘리포니안들에게 이 정도 쯤이야 뭐... 가뿐하죠. ^^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 곳입니다.

리스트에 있는 순서대로 와인을 따라 줍니다.

리스트에는 와인 이름과 생산 년도, 그리고 와인에 대한 짧은 설명이 있습니다.

이 와인은 딸기맛과 오렌지 맛이 난다든가, 나무 냄새가 난다든가 하는 설명을 보면서 그 맛을 찾아보려고 애써봤는데요,

입맛이 싸구려인데다 미각이 무뎌서 정말 힘들더군요.

친구와 둘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맛을 잘 모르겠어..."라면서 키득키득 웃을 수 밖에 없었어요.

사실 와인 설명글에 있는 맛이나 향기는 상당히 주관적인 묘사라서 모든 사람이 꼭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읽다보면 웬지 그렇게 느껴줘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중압감 같은 게 생겨나요.

만약 그대로 못 느끼면 와인한테 굉장히 미안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와이너리에서는 와인과 함꼐 먹을만한 Dipping Sauce라던가 과자, 빵등을 같이 팝니다.

위의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까 맛있는 올리브 Dipping Sauce를 놔뒀더라고요.

제가 올리브를 좋아해서 웬만한 올리브는 다 맛있습니다만...ㅋㅋㅋ

그리고 아래 사진은 와인을 담아서 숙성하는 오크 통입니다.

 

 

 

다음 와이너리로 향하는 중에 미니어쳐 말이 있는 농장을 보고 잠시 차를 세웠습니다.

정확히 이런 종류의 말을 뭐라고 부르는 지 모르겠습니다. 조랑말보다도 더 작은 종류같은데...

그런데 이 조그만 녀석들도 말이라고 폴짝폴짝 잘도 뛰어다닙니다.

이런 애들은 왜 키우는 건지 궁금하더군요. 농사에 쓰일 수는 없을 것 같고, 타고 나니기에도 너무 작고...

작은 녀석들만 내보내는 경마가 있거나 애들 생일파티에 대여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목적지인 Firestone Winery로 향하는 길에 차 안에서 몇 장 찍었습니다. 내리기 귀찮아서... 쿨럭...

아래 사진에서 포도나무가 보이시나요? 경사면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초록색 덤불이 포도나무입니다.

 

 

 

Firestone Winery를 간다고 해놓고 왜 Curtis Winery가 나왔는가 하면, Firestone Winery로 가는 길목에

Curtis Winery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집이 같은 집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Firestone Winery에 가서 와인 테이스팅을 하면 Curtis에서도 무료로 테이스팅을 할 수 있죠.

그래서 Firestone을 먼저 갔다가 Curtis를 들르려고 했는데 Firestone에서 너무 시간이 지체되서 아쉽게도 Curtis는 가보지 못했어요.

Curtis Winery 간판 뒤로도 포도나무들이 보입니다.

 

 

1972년에 세워진 Firestone Winery는 이 근방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입니다. 73년에 첫 수확을 거뒀다고 하죠.

몇년전에 개봉된 와인 영화 Sideways에서도 나오는 곳입니다.(이 영화의 포스터,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 글을 쓰면서 그 영화를 다시 한 번 슬쩍 봤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정말 동감이었어요.

캐버넷 프랑이 정말 깬다는 거. 테이스팅 해보고선 '대체 이거 왜 만들었어...'하면서 투덜거렸거든요.

 

 

 

와이너리 들어가는 길과...

 

 

와이너리 입구 외부...

 

 

그리고 와이너리 내부입니다.

테이스팅 룸에 가을답게 가을냄새나는 장식을 해놨어요. 근데 좀... 작위적으로 보여요.

너무 모범적인 장식이라고나 할까요.

 

 

 

 

테이스팅하는 모습입니다.

한 발 들이자마자 향긋한 와인 냄새가 기분좋게 온 몸을 감싸는 중에 북적북적 시끌시끌... 정신 하나도 없어요.

어찌나 다들 신나서 떠드는지...

그래도 향기에 이끌려 어느샌가 테이스팅 잔을 잡게 만듭니다.

영화 사이드웨이는 한마디로 피노누아(Pinot Noir)에 대한 예찬이라고 해도 좋을 영화인데

그 중 한 무대인 이 Firestone Winery에는 정작 피노누아가 없습니다.

캐버넷 소비뇽, 캐버넷 프랑, 보르도 블렌드, 시라, 샤도네이 등이 있고 멜로(Merlot)를 가장 중점적으로 미는 것 같았어요.

여기 멜로가 향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근데 맛은 음... 제 입맛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전 입 안에 꽉 찬 느낌을 좋아하는 데 이 곳 와인들은 대체적으로 가볍고 빈 듯한(Hallow) 느낌이었거든요.

가벼운 맛이 꼭 싫은 건 아닌데, 그래도 뭔가 2% 부족한 가벼움이랄까... 그런 게 있었죠.

어쨌거나 테이스팅을 다 하고 나니까 와인이랑 물을 얼마나 번갈아 마셨는지 배가 불러서 힘들었습니다.

취하는 게 아니라 배가 불렀어요. 와인 마시고 배불러보긴 정말 처음입니다. 으어...

 

 

이 곳에서 저희의 테이스팅을 도와준 직원의 말에 따르면 전설적인 와인제조가 앙드레 첼리스체프(Andre Tchelistcheff: 1901-1994)가

피노누아를 만들면서 "신은 캐버넷을 만들고 악마는 피노누아를 만들었다(God made Carbernet. The devil made Pinot Noir.)"라고

했다는 군요. 아직 피노누아를 거의 마셔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대충 감은 오는데, 정확하게 '아! 맞아!'라고 말하게 되려면 한참 먼 것 같아요. 갈 길이 먼 거죠. ^^

근데...

피노누아를 좀 내놓고 그런 말을 하지...

내놓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요, 이 사람아... -_-;;;

 

 

이 와이너리에서는 자체적으로 포도도 키우고 와인도 만드는지라(포도밭이 없이 다른데서 포도를 갖다가 와인을 만드는 곳도

있다더군요.) 전체 와인 제조에 대한 간단한 투어도 합니다. 아래 보이는 기게는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으깨서 즙을 짜내는 기계에요.

포도즙을 짜는 방법은 이런 기계식과 바구니로 눌러 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하는데요, 어쨌든 수확은 90%이상 사람 손으로

한다고 합니다.

 

 

 

투어를 담당한 수잔 할머니입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잘 설명해주셨어요.

 

 

 

할머니 뒤로 줄지어 서 있는 탱크들이 근사하죠?

이 대형탱크에 와인을 넣고 숙성시킨다고 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오크통에 넣고 하기도 하고요.

이 와이너리에선 두 가지 방법을 다 쓰더군요.

 

 

각 칸마다 와인들이 생산년도에 따라 구분되서 들어있어요.

이건 일반인에겐 팔지 않는 비매품인데, 가끔가다 자선행사같은데 내놓아서 기금마련하는 데 쓴다고 하는 군요.

 

 

 

줄지어 서 있는 오크통이 '아, 와이너리다...'하는 느낌을 제대로 줍니다.

바로 이 장소가 영화 사이드웨이에 나온 곳이에요. 영화장면 캡쳐를 보고 비교해보시죠.

 

 

 

 

이 영화에서 처음 산드라 오를 봤는데 완전 반했습니다. 연기를 정말 깔끔하게 잘하더라고요.

산뜻하고 드라이하면서도 꽉 차는 샤도네이같은 연기였어요. ^^

그 뒤에 나온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선 완전 팬이 됐지요. 거기서도 여전히 샤도네이같은 깔끔한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이 날 할머니께서 워낙 많은 얘기를 해주신 터라 오히려 기억나는 게 몇 개 없네요.

하지만 오크통에 붙어있는 딱지를 어떻게 읽는지는 확실히 배웠습니다. ㅎㅎ

아참, 그리고 와인 병 같은데 있는 설명을 보면 와인에 무슨 무슨 과일맛 내지는 무슨 무슨 꽃 향이 난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그건 포도 자체에서 파생된 맛이나 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을린 맛이라던가(Smokey, Toasty) 나무향, 카라멜향 같은 건

숙성시키는 나무통에서 배어나오는 향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래 사진은 이 와이너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모습입니다.

현재 이 와이너리의 경영자는 첫째 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인데요(첫째 아드님께서 시의 세계에 푹 빠지시는 바람에),

아직 미혼이시라는 군요. 뭐... 이거 완전 할리퀸 로맨스 소설 하나 나오는 거죠.

대도시에서 대기업을 경영하던 주인공, 형님이 와이너리의 경영을 거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에게 끌려와서

이 시골 구석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물론 로맨스의 주인공 답게 와인도 어찌나 잘 만드시는지...),

어두운 과거를 가진 여주인공이 이 와이너리에 와서 일하게 되면서 어쩌고 저쩌고... ㅋㅋㅋㅋ

할머니께서 열심히 설명하시는 동안 혼자 이런 상상하면서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할머니 미안... ^^;;;

 

 

 

앞에 갔던 Rideau Winery도 그렇고 이 Firestone Winery도 그렇고, 결혼식장으로 참 많이들 이용되는 모양입니다.

마침 결혼하는 커플이 있어서 실례를 무릎쓰고 찍어왔습니다. 테이블 세팅이랑 전체적 분위기가 멋있었어요. ^^

 

 

이 날 테이스팅에 썼던 잔입니다. 그리고 Rideau WInery에서 집어온 반짝이 구슬 목걸이.

궁색하게 세팅해놓고 찍었더니 참 엉성하게 나왔네요. 이럴 때마다 사진 찍는 솜씨가 엉망이라는 걸 절감합니다.

이번에 생각치도 않게 다녀온 와이너리 여행,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만 시간이 촉박해서 두 곳 밖에 가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다음엔 좀 더 일찍 가서 여러 곳을 다녀봐야겠습니다.

가을이 서늘한 손으로 나뭇잎에 계절물을 조금 더 들이면... ^^

 

 

 

 

      

 

 

 

 

출처 : 고양이별자리의 Enchanted Forest(no map!)
글쓴이 : 고양이별자리 원글보기
메모 : 친구에게 생일선물이라는 말은 안하고 멀지 않은 곳인 Santa Ynez Foxen Trail에 있는 와이너리들을 함께 다녀왔습니다. 계획대로 먼저 Los Olivos에 (점심 식사 구입한 마켓이 있는 동네) 들린 것 까지는 좋았는데요. 그 다음에는 길을 잃어서 가장 마지막에 들리려고 했던 솔뱅에 먼저 가버리고 말았어요. 친구야,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