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삶/사는 이야기

어머니와 도시락

일레인홉의 생각없는 한마디 2005. 4. 30. 02:59

2005년 4월 29일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 소리가 아니고 전화벨 소리)

 

어머니: “어~ 그래. 왜.”

 

송신자 번호가 전화에 나타나니 요즈음은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는 일이 없으시다. 그냥 전화 받자 마자 용건을 말씀하신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종종 인사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불쑥 말을 꺼내는 분위기다.

 

“제가 국민학교때였는데, 어머니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 날 점심을 어머니께서 가져다 주신다고 해서 그냥 학교 왔었어요.
그런데, 점심 시간이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안오시는거에요.
점심 시간이 다 끝나가는데도 어머니께서 안오시구요.”

“하하… 응, 그래.”

 

어머니께서는 기억하고 계셨다. 그 당시 일을 기억하시는 표정이 전화선 너머로 보인다.

 

“남들 열심히 맜있게 도시락 먹는데, 저는 먹을 것이 없어서 그냥 앉아 있었어요.
우두커니 40분인가를 칠판을 바라보면서 그냥. 움직이지도 않고.
아~ 서럽드라구요.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은 없고.”

“글쎄말야. 배 고픈 것을 못 참는 네가.”
“하하. 네. 그랬어요. 아~ 자존심 상해서 울지도 못하고 그냥 칠판만 노려보고 있었지요.”
“허허. 그래, 그래.”
“그런데 점심 시간이 다 끝나서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가지고 오신거에요.
어머니 보이고 밥이 보이는 순간, 서러움의 눈물이 펑펑 나오는 거에요. 배고픈데 먹지도 못하고.
도시락 없어서 점심도 못 먹고, 그 다음은 서러워서 못 먹고. 이래 저래 점심 못 먹고.”
“하하. 그랬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던가. 결국은 도시락을 먹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먹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신발도 뜯어 먹는 내가, 안 먹었을리 없다.

 

어머니께서도 회상하신다.
“그 때 그렇게 점심을 가져다 주었는데, 뒤에서 너의 아무개 담임 선생이 그러드라. ‘아휴, 얄미워.’
뭐가 얄미원가 했는데, 나중에 다른 선생들에게 너의 담임 선생이 그랬다드라. 딸애만 점심 갖다주고, 담임은 안 갖다 준다고. 하하.. 나 원.”

“전형적이었네요. 그 당시 사립학교 교사들 그랬지요, 뭐.”
“응, 그랬지. 지금도 그럴까.”
“그런데 그 도시락 이야기 하려고 전화 한 것은 아니구요. 일 하다가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나잖아요.”
“지금 일하는 중이니?”
“네. 그래서, 왜 전화를 드렸는가 하면...”

 

잠깐 뜸을 들였다. 이 용건의 한마디를 하려고 옛날 일을 이렇게 장황하게 풀었던 것이기에.

 

“어머니, 사랑한다구요~ 에구, 딸년 따끈한 점심 먹이시겠다구 학교로 점심을 가져다 주시고. 아~ 이렇게 키워 주시고. 사랑한다구요.”
“하하하... 그래서 전화 했어?”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딸년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어머니
배고픈 것 못 참는 딸을 위해 언제나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어머니의 집.

 

사랑하는 어머니. 아무리 무뚝뚝해도 그 말만은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네, 그래서 전화 했어요. 엄마, 사랑해! 하하.”
“그래, 나도 사랑해. 우리 딸.”

 

일레인 홉
Elaine H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