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부터 머리가 아프시고 속이 안 좋다 하시더니, 아침에는 생묵이 올라온다고 하시며 미열로 누워계시던 어머니.
그런데 아침에 외출을 해야 한다는 딸의 말을 듣고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십니다.
"너 토마토 주스 마셔야 되."
딸애가 약속에 늦는다고 나가버릴까봐 허겁지겁 토마토 주스를 만드시는 어머니의 바쁜 손길이 부엌에서 들렸습니다. 아니, 어머니 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약속이 중요해서 그냥 나왔을텐데요. 오늘은 가족보다 더 중요한 약속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지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약속에 조금 늦을 듯 합니다. 괜찮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냥 통째로 먹겠다니까. 주스로 만드실 것 없어요."
"…, 아냐. 마셔."
"그냥 먹어도 되는데."
꿀꺽꿀꺽 토마토 주스를 마셨습니다. 좋아하던 토마토 주스인데 약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인지 질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안 마실 수가 없습니다. 토마토 주스는 어머니의 마음이거든요. 안 마시고 버리는 것은 어머니의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항암에 좋다는 토마토는 제가 어머니께 병명을 고백한 이후 집안에 끊긴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토마토 주스 한 잔이 침실 건너편 사무실에 놓여집니다. 컵도 제가 즐겨쓰던 와인 글라스에요. 제법 색도 예쁘고 폼도 납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엄마 잡수셨어? 엄마가 잡수셔야 되. 미리 예방도 되잖아요.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건데."
"네것 만들면서 부엌에서 먹었어."
정말 잡수셨을까요.
오늘은 체리 토마토를 많이 사오셔서 간식으로 내놓으십니다. 그리고 당신도 몇 개 오물오물 잡수십니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어머니도 토마토를 잡수시고 계십니다.
아침마다 마시는 토마토 쥬스 한 잔. 그것은 토마토의 항암효과보다는 어머니의 약손 효과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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