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득 House, M.D.에서 나왔던 두 가지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는데.
하나는 무기협박으로 의사에게 병명을 알아내게 하는 극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죽을 줄 알고 죽음을 준비하던 사람이 오진이라는 것을 알고 인생이 망가지는 정말감을 갖게 되는 내용이다.
사실 병명을 몰라서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의사를 잡아 놓고 병명을 해명시키기 위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진부한 내용이다. 오진에 의해 인생이 오히려 망가지게 되는 모순도 종종 보이는 내용이고.
그렇게 진부한 드라마의 내용일 뿐이지만 공감되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풀렸을 때, 체포되어 감옥에 가더라도, 불치라고 하더라도, 답을 찾았다는 그 자체에 큰 안도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동물과는 다르게 하는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흑과 백이 있어야 하는, 모든 질문에 대답을 찾아야 하는 -- 영어로 하면 closure가 있어야 하는... 이건 한국말로 정확하게 표현을 잘 못하겠다 -- 인간의 속성.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자질구레한 병치레를 많이 하고 있다. 이게 병원에 가서 해결될 듯한 것이 아니다. 체기, 심한 두통, 뻐근한 근육통, 쓰린 속, 이유없는 소화 불량, 몸살 증상, 나이와 함께 오는 각종 증상 등등, 여러 가지 잦은 앓이로 생활에 지장이 많다. 약속도 자주 취소하게 되었고, 자리에 나가서도 진이 빠져서 일찍 자리를 떠야하기도 하고, 생활에 이모저모 많은 조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런데 이게 큰 병이 아니라서 생색을 내거나 동정을 받을 수도 없는지라... 이런 일이 잦다 보니 오해도 작지 않게 생겼다.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오해를 샀을지도 모르겠구나.
이번 주말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서 가까스로 학생들과의 약속을 세 개나 취소했는데 기분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미안하고 화도 나고 이게 어느 학생에게는 처음이 아니라서 핑계 같이 들릴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평생 안 하던 심한 잠꼬대도 했다고 한다. 가위에 눌린 듯한 큰 소리를 냈다는데.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간인가보다. 흑백을 알고 싶다. 대답이 듣고 싶다. 병이 있다면 병명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이 병이 있구나라고 희망을 갖고 노력을 하든지 포기하고 살든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도 결과도 없을 허둥몸짓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즈믄 열 여섯해 하늘연달 열흡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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